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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에 위치한 관곡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일괄 문서들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관곡서원에 관계되는 서적과 문서들로 총 12권 10매인데, 서원 관계 자료가 희귀한 편이어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원 관계 서적이나 문서들이 희귀한 편인데 관곡서원에 관계되는 일괄 문서를 두루 구비하고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되며, 保奴案, 保直案은 院奴와 서원의 직숙을 담당하던 院直을 재정적으로 돕기위해 배정된 保인 保奴, 保直의 명단으로 19세기에 서원에도 保가 배정되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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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치 지사면 관기리 208
· 문의 및 안내 063-640-2315
· 전화번호 063-640-2315
· 홈페이지 없음
· 지정 현황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98호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는 관곡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호연정 최윤덕(浩然亭 崔潤德), 청호당 이적(淸湖堂 李迪), 비암 이형남(比巖 李亨南) 등 세 선생의 행장(行狀)과 실기(實紀)를 비롯하여 홀기(笏記), 장이안(長貳案), 심원록(尋院錄), 유생안(儒生案), 보직안(保直案), 보노안(保奴案), 완문(完文), 품목(稟目), 통문(通文) 등이다. 이 문서들은 19세기 서원에도 보(保)가 배정되었다는 것, 서원 접인(接人)의 잡역을 금해줄 것을 진정하여 수령으로부터 승인받는 과정, 서원 유안(儒案)에 평민이 입록(入錄)되고 있으며, 유생의 확보가 재정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 등 18~19세기 서원들의 사회·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간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는 그간 1733년(영조 9)부터 1845년(현종 25)까지 약113년 동안 작성된 서원 관련 일괄 문서라고 소개해 왔으나, 이번 <도지정 문화재 목록화 및 디지털화 사업>을 통해서 밝혀진 몇 가지 오류들을 바로잡아 다음의 표를 작성하였다.

[표 1]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 목록

연번 문화재명 수용 규격 작성연대 비고
        기존 수정보완  
1

삼선생행장(三先生行狀)

1책18장

23×36×0.5

1733

(영조9)

경술(1790)

 
2

선생실기(先生實記)

1책21장

22×26×0.5

1744

갑자(1804)

 
3

홀기(笏記)

1책14장

10.5×28×0.5

1744

미상

 
4

장이안(長貳案)

1책29장

24×27×1

1744

갑자(1804)

 
5

심원록(尋院錄)

2책26장

21×24×0.5

1744

갑자(1804)

 
6

심원록(尋院錄)

2책26장

   

기해(1959)

 
7

유생안(儒生案)

1책7장

21.5×22.5×0.2

1843

계묘(1843)

 
8

유생안(儒生案)

1책6장

21.5×33×0.3

1845

을사(1845)

 
9.10

보직안(保直案)

2책5장

22×31.5×0.3

1815

신미 2월

 
11

보노안(保奴案)

1책5장

21.5×22.5×0.2

1842

계묘(1843)

 
12

보노안(保奴案)

1책6장

28×28×0.2

1845

을사(1845)

 
13

완문(完文)

1장

56×52

1744

갑자(1804)

 
14

관기서원품목(館基書院稟目)

1장

46×72

1778

무술(1838)

 
15

첩보(牒報)

1장

41×38

1780

경자(1840)

 
16

품목(稟目)

1장

47×70

1781

신축(1841)

 
17

전령(傳令) 오수교량감관 박광언 처분장(獒樹橋梁監官 朴光彦 處)

1장

42×23

1783

신축(1841)

 
18

관곡서원 재임품목(齋任稟目)

1장

44×69

1749

계묘(1843)

 
19

현감위상고사(縣監爲上考事)

1장

44×26

1784

기사(1809)

 
20

관곡서원재임품목(齋任稟目)

1장

48×75

1784

갑진(1844)

 
21

부사 처분장(府使爲次請事)

1장

38×34

1784

갑진(1844)

 
22

통문(通文)

1장

65×99

1804

갑자

 
 

전적 12책, 고문서 10장

       

위 [표 1]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 목록에 의하면, 관곡서원이 건립되는 즈음 『삼선생행장』과 『선생실기』 등이 서간(西澗) 이세서(李世瑞, 1720~1811) 선생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관곡서원은 이세서 선생을 중심으로 1804년을 전후해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소장 자료중 그 연대가 가장 앞선 것은 『삼선생행장(三先生行狀)』이다. 『삼선생행장(三先生行狀)』은 관곡서원에 배향된 최윤덕(崔潤德, 1376∼1445), 이적(李迪, 1480∼1544), 이형남(李亨南, 1513∼?)의 행장을 기록한 것으로 기록자 이세서 선생의 활동시기와 비교하면, 경술년은 1730년, 1790년이 되고, 숭정기원후 3경술년은 1790년이다. 따라서 적어도 『삼선생행장』은 1790년 이후에 정리된 것이다.

『삼선생행장』에는 관곡서원에 배향된 삼선생에 대한 연보와 행장 외에도 <삼선생건사통문(三先生建祠通文)>이 있다. 이것은‘갑자년 9월’에 영천회중에서 황전(黃銓)과 김규성(金圭聲) 등이 연명하여 향교에 보낸 통문으로 세 선생을 배향하는 사우를 건립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 문서는 관곡서원을 건립하는데 기점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서인데, 이것의 연대를 1734년 갑인년에 작성한 통문으로 파악하고, 1736년에 관곡서원을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면서 이후 건립연대 뿐만 아니라 소장 자료의 간기 파악하면서 약간의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원의 건립연대는 서원이 위치한 지방의 지방지(地方誌)에 기재하였던 사례에 비춰볼 수가 있다. 관곡서원은 조선시대 남원부 지사방(只沙坊) 소속이었고, 1914년 이후 임실군으로 소속되었다. 그런 면에서 남원지방의 읍지 『용성지(龍城誌)』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관곡서원이 그간 알려진 것처럼 1736년에 건립되었다면 건립이후 읍지에서 서원사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1796년 『호남읍지』 「남원」부의 서원사우편, 영조 28년(1752)에 간행된 『용성지』에도 관곡서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1972년 증보판 『남원지』에는 1820년 전후로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었고, 1906년 이후 남원부 소속의 지사방이 현재 임실군내로 소속된 이후인 1924년에 간행된 『임실군지』 상, 원우편이나, 1960년에 간행된 『임실군지』 등에는 순조대 1820년경 창설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읍지를 통해서 관곡서원의 건립연대를 추정한 것과 현재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에 보이는 갑자년, 갑진년, 무술년, 신축년 등등에 대한 연대 추정을 1804년 이후로 추정할 수 있었으며, 소장 자료에 보이는 몇몇 인물은 족보 및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한국학중앙연구원)을 통해서 교차로 확인한 결과 [표 1]의 보완수정년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

보노안(保奴案)은 보노의 명부로 을사년 4월과 계묘년 7월에 작성되었다. 보노(保奴)란 서원의 수직과 각종 역 등을 담당했던 사람들로 대신 관에서 부과하던 각종 역으로부터는 면제되었다. 조선후기에는 각 서원에 지급되는 보노의 수가 정해져 있었는데 사액(賜額) 서원은 20명, 미사액(未賜額) 서원 15명이었다. 이들은 수시로 서원의 역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 서원이 있던 지사방(只沙坊)에 거주하는 자들이었다.

유생안(儒生案)은 유생들의 명부로 사액서원에는 20명, 그리고 미사액 서원에는 15명이 배정되었다. 그런데 유생들의 거주지를 살펴보면 보노와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지사(只沙), 갈치(乫峙), 백파(白波), 번암(磻巖), 통한(通汗), 덕고(德古), 내진전(內眞田), 내산동(內山東) 등에 거주하였다.

장이안(長貳案)은 갑자년(804) 10월에 작성된 것으로 관곡서원의 임원 즉 장의(掌議)와 유사(有司)를 역임했던 사람들의 명단이다. 임원들의 자(字)와 생년(生年) 및 체임(遞任) 일자 등이 기록되어 있고, 갑자년부터 무진년가지, 그리고 복설된 1969년부터 2008년까지 기록이다.

심원록(尋院錄)은 서원에 와서 봉심(奉審)한 유생들의 명단이다. 2책으로 되어 있는데 작성시기는 갑자년(1804) 10월과 기해년(1959) 2월로 되어 있다. 갑자년에 작성된 심원록의 첫 부분에는 청호선생의 외손인 전주이씨와 서원 근처에 거주하고 있던 태씨(太氏)들이 서원을 와서 봉심한 날짜와 봉심자 이름 등이 기록되어 있다. 봉심자 중 서지행(徐志行, 1765~?)은 신유년(1801) 진사시에 입격한 사람으로 1805년에 방문하였고, 김견(金鈃, 1763~?)은 1807년에 입격한 사람으로 당해년에 방문하였다. 기해년(1959)에 작성된 심원록의 첫 부분에는 청호선생의 후손으로 경상도 산청, 합천, 단성 등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서원을 방문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심원록의 경자년 8월에 봉심한 김사명은 거주지를 전북 임실군 지사면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지사면이 임실군에 소속된 것은 1914년이고, 이후 경자년은 1960년이다.

고문서 가운데 품목(稟目)은 4매인데, 서원의 재임이 유생과 접인의 차정과 관련하여 남원부사에게 제출한 것이며 완문(完文)은 갑자년 10월에 남원부사가 관곡서원에 발급해 준 것으로 유생, 보노, 접인(接人) 등에게 잡역을 부과시키지 말라는 내용이다. 접인이란 서원 근처에 사는 평천민들로 이들은 서원에서 각종 행사가 있을 때 자주 동원되었다.

전령(傳令)은 남원부사가 접인과 관련하여 관곡서원 재임들이 제출한 품목을 살펴본 후 오수교량감관(獒樹橋梁監官) 박광언(朴光彦)에게 내린 지시문으로 관곡서원 접인(接人)들을 침책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밖에 첩정(牒呈) 1매, 하첩(下帖) 1매, 차첩(差帖) 1매, 통문(通文) 1매가 있다.

본 자료집은 관곡서원 소장 전적 12책과 고문서 10매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관곡서원에 배향된 최윤적, 이적, 이형남 등 세분의 행적은 『삼선생행장』(1790)을 그대로 번역하였으며, 나머지는 번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널리 양해바라며, 자료집을 만들면서 촬용한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 전체 디지털 이미지는 향후 임실군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통해서 열람할 수 있다.

 

관곡서원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 208번지

관곡서원은 순조대인 1804년경에 창건되었으며 호연정 최윤덕(浩然亭 崔潤德), 청호당 이적(淸湖堂 李迪), 비암 이형남(比巖 李亨南)을 배향하고 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전국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59년 후손들에 의해 복설되었다. 향사일은 음력 2월 17일이다. 2003년에 관곡서원에 소장된 전적 12책, 고문서 10점이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이용 안내

· 지 정 :도지정 - 유형문화재

· 종 목 :유형문화재 제198호

· 지정일 :2003.06.16

 

위치 정보

  • 빨래판선돌

    전북 임실군 지사면

    063-640-4384

  • 소충사

    전북 임실군 성수면 산성로 725-23 (오봉리, 소충사)

    063-640-4156

  • 안하체험마을

    전북 임실군 지사면 안하3길 11

    063-640-4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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