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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암부도

상이암에 있는 해월당 부도와 두곡당 부도는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는데 해월당 부도는 항아리모양의 몸체위에 8각형의 옥개석을 올리고 그 위에 보주를 갖춘 194cm 정도의 높이이다. 두곡당 부도는 석종형 부도로 8각의 하대석위에 교복형으로 된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보주를 얹은 높이 125cm의 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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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치 성수면 성수리 산85
· 문의 및 안내
· 전화번호
· 홈페이지 없음
· 지정 현황 유형문화재 제150호
성수산에 위치한 상이암은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최초 도선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태조 3년(1394) 각여선사(覺如禪師)가 증수하였으나 1894년 동학혁명때 병화를 입었다가 다시 1909년 김대건(金大建)이 중건했다. 일본 강점기에는 의병장 이석용이 상이암을 근거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여파로 절은 일본군대에 의해 불에 타버렸다. 1912년 대원(大圓) 스님이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당시 소실되었다. 1958년 임실군수 양창현(梁昌鉉)이 중심이 된 상이암 재건위원들이 빈터에 법당과 요사를 지었다. 『성수산 상이암 사적기』에 의하면, 894년에 고려 태조 왕건이 17세의 나이로 도선국사와 함께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고 다시 3일을 더 기도를 올렸다고 하는 전설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1380)을 승리로 장식하고 개선하는 길에 이곳에 들러 3일간 치성을 드리자, 천신이 내려와 ‘성수만세’를 세 번 외쳤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후 조선 태조가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경내에는 고려 태조가 썼다는 ‘환희담(歡喜潭)’ 비석과 태조 이성계가 썼다는 ‘삼청동(三淸洞)’ 비석이 있고, 혜월당(慧月堂) 부도와 두곡당(杜谷堂) 부도가 각각 문화재자료 제124호와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상이암부도 문화재자료 제124호, 유형문화재 제150호

해월당 부도(문화재자료 124)와 두곡당 부도(유형문화재 150)는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는데 해월당 부도는 항아리 모양의 몸체위에 8각형의 옥개석을 올리고 그 위에 보주를 갖춘 194㎝ 정도의 높이다. 두곡당 부도는 석종형 부도로 8각의 하대석 위에 고복형으로 된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보주를 얹은 높이 126㎝의 부도이다. 현상과 형식 구조면에서 볼때 조선조 중기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세워진 듯 하고, 상세한 내력이나 전설조차 없으나 예술적인 면에서 볼 때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삼청동비 임실군 향토문화유산 기념물 제2호

상이암 입구에 있는 비각은 어필각(御筆閣)으로 안에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가 쓴 ‘삼청동(三淸洞)’을 개긴 비석이 있다.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무학대사의 권유로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렸는데, 삼업(三業)이 청정함을 깨닫고 ‘삼청동’이라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또한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 손을 귀위로 올리면서 ‘성수만세(聖壽萬歲)’라 세 번을 외치는 길몽을 얻었다고 한다. 이로써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이라 고쳤다고 한다.

어필각의 맞은편에는 ‘환희담(歡喜潭)’이라는 비가 전한다. 일찍이 신라 말 도선국사(827~898)가 이 산을 둘러보고 천자봉조지형(天子奉朝地形)으로 주변의 여러 봉우리들이 하례하는 형국이라며 탄복하면서 산이름을 팔공산(八公山)이라고 하였고, 장차 여덟 성인이 차례로 날 것이라고 하였다. 헌강왕 1년(875) 이곳에 암자를 세웠으니 이것이 도선암이다. 도선국사는 송도로 올라가 왕건(877~943)의 부친 왕융을 찾아 왕건으로 하여금 이 곳 성수산에서 백일치성을 하도록 권유하였다. 왕건이 17살이 되어 이곳에 내려온 왕건이 이 말에 의지하여 백일기도를 올렸으나 응답이 없자 다시 3일을 더 기도하였다. 그런 연후에 못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 문득 더벅머리 동자하나가 못 옆에 서있었다. 왕건이 말하기를, ‘너는 어디에 사는가?’ 하니 대답하여 말하길, ‘이름없는 마을에 삽니다.’ 하였다. 왕건이 또 묻기를, ‘너의 성명은 어찌 되는가? 하니, 또 대답하기를, ’성은 불성(佛姓)으로 불성은 본래 이름이 없습니다.(佛姓也而佛姓卽本無名也)‘하면서 갑자기 층암으로 올라가 산 정상에 오르더니 드디어 노래하기를, ’天造一土 無形無體 一土塗身 浴不洗滌(하늘에서 땅을 만들 때는 형체와 모향이 없는 것이고 땅으로 사람을 빚었으니 목욕을 해도 씻어낼 수 없는 것이다.‘ 하고는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왕건이 기연을 얻었음을 알고 환희(歡喜)를 이길 수가 없었다. 이로 석면에 글씨를 새기니 이것이 ’환희담‘이었다.(『성수산 상이암사적(聖壽山 上耳庵寺蹟)』)

 

 

이용 안내

· 지 정 :도지정 - 유형문화재

· 종 목 :유형문화재 제150호

· 지정일 :1986.09.08

 

위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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